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대한민국 국군/역사 (문단 편집) == [[간첩]]과 [[공작원]] == 6.25 전쟁이 끝난 뒤에도 무수히 많은 소규모 전투가 있었으며 때로는 수십명에 달하는 인원들이 전투에 휘말리기도 했다. 1950년대말에 한국 인구가 3천만이 안 되던 시절에 국군은 60만에 달했다. 한국 정부는 일부 군축을 하는데 당시엔 설비가 제대로 안 되어 있어 중위 8년차나 9년차까지 즐비했다고 한다. 전쟁 통에 이 사람들보다 선배인 건군기의 인원들이 장성과 영관급에 포진했기 때문이었다. [[조영길]] 전 국방장관의 인터뷰에 나온다. [[http://legacy.www.hani.co.kr/section-005010001/2001/10/005010001200110152339081.html|관련기사]] 또한 북한에서는 [[공작원|무장공비]]가 넘어오고, 한국도 북파공작원을 보내는 등 서로 치열하게 비정규전을 수행하였다. 대표적인 사건으로 1996년 [[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]]이 있다. 비상식적인 방법으로 길러진 [[군기]]의 결과는 북한의 무장공비 침투가 한창이던 60~80년대 대간첩작전 사례에서 잘 드러났다. 그들은 야음을 틈타 잠입하다 [[초병]]에게 발각되어도 어두워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해, 간부 행세를 하면 더 이상 간섭하지 않고 지나가게 하는 수법을 즐겨 사용했다. 이렇게 침투한 무장공비들은 후방에서 작전을 끝마치고 돌아간 것은 물론이고, 가능하면 해당 초병도 살해했다. 이른바 '''[[군기]]'''를 열심히 잡는 것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잘 보여 주는 사례이다.[* 이런 군기는 보여주기(쑈)다. 그런데 이런걸 좋아하는 놈들이 높은 자리에 많다는게 문제.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